기축년 새해의 첫번째 가족여행 (남해, 하동군 진교면 송원리...)


  • 남해대교 근처, 가정집에 걸려있던 생선 말리는 망.


기축년 새해 들어서, 가장 큰 명절이라고 하면 아마 구정이 있을 것이다.

구정은 본래 중국의 음력 설날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나, 한국의 모든 가정에서 양력 설날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명절이다.

아니나 다를까, 민족의 대 이동인 만큼, 이번 귀성길은 한마디로 고생길이었다.

구정 이틀전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눈은 서해안 지역의 대설주의보로 확대되었고, 급기야 우리 가족이 새벽 1시에 기상하여 출발해야 하는 지경이 이르렀다. 고생길이 되었든, 귀성길이 되었든,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즐거웠다.

이것저것 기축년에 해야 할 일들과 소망하는 일들..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란 정말 즐겁고 화창한 봄날과 같은가 보다.

기축년 새해를 맞이하여....

기축년 새해를 두 번째 (?) 맞이하여...

새로운 결심의 나날을 보냈다... 일본의 새해는 서양식 새해 그러니까, 1월 1일이 되고, 한국의 새해는 중국의 새해를 따라 음력으로 1월 1일이 새해가 된다.

일본인 아내를 맞은 나는 매년 두번의 새해를 맞이한다.

그래서 새해 소망도 두번이나 반복할 수 있다.

누가 그랬다, 진심으로 바라는 일을 반복할 수록 현실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올해는 나의 소망이 모두 이루어지길 바라며, 두번째 새해를 연다....

[압록강은 흐른다]

[압록강은 흐른다] (SBS 방영-2009년 설날특집)을 본 후, 고 이미륵 박사에 관한 블로그를 알게 되었다.

다음은 돛과 닻님의 블로그에서 발췌한 글이다.



▲ 이미륵 묘지(그래펠핑). ⓒ 이미륵박사기념사업회(http://mirokli.com/)에서



▲ 범우사, 1979

인 터넷을 뒤적이다 지난 9월 초순에 김광규 시인이 제5회 <이미륵상>을 받았다는 걸 알았다. 이미륵(1899~1950),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한 작가를 떠올렸다. 나는 서가를 뒤적여 그의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끄집어냈다. 범우사에서 1979년에 출판한 세로쓰기본이다.

얼추 30년이 되어가면서 책은 누렇게 변해 있었다. 초판 나온 지 6년 후에 나온 중판(重版)인데, 값은 약소하게 1,200원이다. 번역은 전혜린. 그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1965년이니 이 책은 번역자 사후에 다시 출판된 책인 셈이다.

<압록강은 흐른다>는 독일에서 독일어로 글을 쓴 작가 이미륵의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가 ‘일제의 침략과 신구문화의 교체가 시작되던 자신의 소년 시대부터 독일에 도착하기까지’의 삶을 회상한 것이다. 1946년 독일에서 초판이 발행되자 곧 매진되어 1950년에 재판되었으나 다시 품절되었다.

낯선 동양의 조그마한 나라에서 온 작가의 무엇이 사람들을 사로잡았을까. 그의 작품은 ‘아름다운 독일어 문체와 이국적인 소재’ 등으로 전후 독일 문단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특히 ‘독일인보다 더 아름답게 쓴 독일어 문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 소설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 이미륵. 1933년 무렵.

이 미륵의 본명은 이의경이다. 그는 189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1919년 경성의전에서 공부하던 중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일경에 쫓겨 상해로 망명했다. 1920년 프랑스를 거쳐 독일로 유학, 1928년 뮌헨대학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47년부터 1949년까지 뮌헨대학에서 한국어, 중국문학과 역사를 강의했다. 그는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저술과 한국학 강의를 통해서 조국을 독일에 알리는 데 힘썼다. 그러나 조국을 떠난 지 30년, 그는 그토록 그리던 고국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뮌헨 근교 그래펠핑에서 세상을 떠났다. 1950년 3월 20일이었다. 석 달 후에 일어난 한국전쟁을 모르고 눈을 감은 것은 다행이었을까.


언젠가 우편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알지 못하는 집 앞에 섰다.
그 집 정원에는 한 포기 꽈리가 서 있었고, 그 열매는 햇빛에 빛났다. 우리 집 뒷마당에서 그처럼 많이 봤고 또 어릴 때 즐겨 갖고 놀았던 이 식물을 내가 얼마나 좋아하였던가―. 나에겐 마치 고향의 일부분이 내 앞에 현실적으로 놓여 있는 것 같았다. (…중략…)

얼마 후에 눈이 왔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자 나는 성벽에 흰 눈이 휘날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흰 눈에서 행복을 느꼈다. 이것은 우리 고향 마을과 송림만에서 휘날리던 눈과 같았다.
이 날 아침, 나는 먼 고향에서의 첫 소식을 받았다. 나의 맏 누님의 편지였다.
지난 가을에 어머님이 며칠 동안 앓으시다가 갑자기 별세하셨다는 사연이었다.



▲독어판 <압록강은 흐른다.>

소 설 <압록강은 흐른다>의 마지막 부분이다. 그가 독일에 도착하고 5개월이 지난 때였다. 짧은 문장의 행간에 배어 있는 것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그 조바심 같은 것이다. 고향으로부터 소식을 듣고자 청년 이미륵은 날마다 우편국을 들렀다. 그러나 그가 받은 첫 소식은 어머님의 부음이었던 것이다.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에는 ‘한국에서의 소년시대’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사촌과 누이, 그리고 동무들과의 소년 시절의 즐거움과 함께 부모님의 이야기, 일제의 침략, 민족의 저항, 조국을 떠나 낯선 유럽으로의 여로 등이 유려한 문체로 그려져 있다.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가 출판되었을 때, 독일 문단의 최대의 찬사를 그에게 바쳤다. 그 찬사는 초판의 매진으로 이어졌다. 독일에서의 서평도 찬양 일변도였다.


이 책의 초개인적인 문제는 동양과 구라파의 접촉에 있다. 그러나 독자전이고 내면적인 고상하고 고결한 문체 속에는 동서양의 접촉을 수행하려는 저자의 은밀하고도 겸손한 태도가 나타나 있다. 이것은 진정한 소설이다. 격렬한 점이 없이 조용히 흐르는 산문이다. 이 사랑스러운 책에 내포되어 있는 불변성과 모든 인간적인 것에 대한 균일성은 위안을 준다. 비록 슬픔이 어떤 사람의 영혼에서도 없어질 수 없을지라도.
― Wihelen. House stein

이미륵 씨는 어머님을 추모함으로써 그의 소년시대의 기록을 바쳤다. 초판은 1946년 파이퍼 출판사의 전후 최초의 출판물이었다. 이 제2판은 이 추억의 저자 이미륵 씨에게 바친다. 우리들이 만났던 가장 순수하고도 섬세한 사람이었던―. (…중략…)

<압록강은 흐른다> 신판에 있어서 우리들은 민족이나 인종차별 없이 인생의 최고의 정직과 선량이라는 것을 자신이 세계의 탁류 중에서 시범한 인간과 시인을 존경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방인인 그가 우리들에게 외계와의 이해에 있어서 자신의 것을 포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기 것을 더욱 더 깊이 파고 또 깊이 실천해 나가는 데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 Piper Verleg 후기

이미륵은 열렬한 반 나치스 평화주의자였다. 그는 히틀러에 저항하다 처형된 뮌헨대 후버 총장과 둘도 없는 친구였다. 지금도 가끔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그를 기억하는 일화는 그가 매우 속 깊은 사람이었음을 증명한다.

나치가 한참 득세하고 있던 시대에 그가 스웨덴에 여행 갔었다. 같은 기찻간에 탄 어떤 독일 사람이 이미륵 씨를 붙들고 맹렬히 히틀러 찬양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묵묵히 다 듣고 앉았던 그는 얘기가 끝나자 물었다고 한다.

“히틀러가 누구입니까?”
그 말에 그 독일 사람은 그를 마치 무슨 진기한 동물을 바라보듯이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아니, 지도자 히틀러를 모른단 말입니까? 그 분의 위업은…….”
하고 또 약 반 시간 웅변을 한 후에
“도대체 당신은 어느 나라에서 오셨습니까? 히틀러 이름도 모르다니!”
하고 물었다. 그는
“독일에서 왔습니다!”
라고 서슴지 않고 대답하여 그를 죽음과 같은 침묵에 빠지게 했다고 한다.
― 전혜린 “이미륵 씨의 무덤을 찾아서”(목마른 계절) 중에서

전혜린의 글에 따르면 이미륵은 어떤 나치 축제일에도 나치의 깃발을 달지 않았고, 오레온 광장에 있는 나치 전몰용사 제단 앞을 지날 때도 의무였던 경례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그 당시로는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었던 행동이었는데도.

전혜린은 자신의 유학시절에 만났던 이미륵의 지인들이 모두 그가 ‘조용한 사람’이었고 ‘독특한 인격의 소유자’임을 회고했다고 전한다. 또 그녀는 ‘이미륵이 살고 생각한 것’은 ‘유리알처럼 맑고 조화에 찬 고전의 세계’라고 말한다.

1919년 9월 일본 법원으로부터 궐석재판으로 2년 구형을 받았던 이의경은 1990년 12월 26일 자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그러나 이미륵과 이의경이 동일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고, 국내 유족과 연락이 되지 않아 국가보훈처가 보관하고 있던 훈장증은 2007년에야 17년만에 유족에게 전해졌다.

▲ <이미륵상>시상식 ⓒ 이미륵박사기념사업회



<이미륵상>은 이미륵을 기려 한독협회와 독한협회가 공동으로 제정한 상이다. 한독협회는 올해 수상자로 독문학자 김광규 시인을 선정하면서 "시인은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적 보편성을 지닌 명징한 시어와 삶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보여주는 탁월한 작품들을 통해 한국의 문화와 시문학을 세계에 알렸을 뿐 아니라 독문학자로서 후학들을 양성하고 독일문학을 한국에 소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밝혔다.

1975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한 김광규 시인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등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시인이다. 그는 ‘단순하면서도 깊은 울림’의 ‘일상시’를 개척한 이로 손꼽힌다. 그의 독역 시집 '조개의 깊이'(Die Tiefe der Muschel)가 독일어권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고 한다.

“시인과 독자 사이의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을 회복하고자 노력”해 오고 “단순성·명징성 등의 언어적 특징을 갖는 ‘쉬운 시’”로 평가되는 그의 시를 나도 무척 좋아한다. 시를 잘 읽지 않는 편인데도 내 서가엔 그의 시집이 두 권이나 꽂혀 있다.

낯선 먼 나라에서 조국과 거기에서의 삶을 주제로 한 소설을 영혼의 재현처럼 써냈던 잊힌 작가를 기억하는 시간에 김광규의 시 <묘비명>은 또 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 시인(詩人)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2008.> 원문을 보시려면, 돛과 닻님의 블로그를 참고하세요....

콜로세움, 이탈리아






콜로세움, 이탈리아...그리고 피렌체.....

2006년 어느 날 (아마도 3월 30일쯤이라고 기억된다..^^), 나는 지금의 아내와 함께 이탈리아로 부활절 방학 여행을 떠났다.
석사학위 과정을 마친 나는 졸업논문이 가지고 오는 억압과 해방감을 한번에 풀 것이라는 기대와 로마, 이탈리아라는 막연한 생각만으로 4박 5일의 여행을 떠난 것이다.

콜로세움! 영화 [글라디에이터]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노애락을 같이 할 수 있었던 그 곳, 콜로세움.
입구에 들어선 나는 입을 다물수 없을 정도의 웅장함과 그 시대 사람들의 지혜에 놀라고 또 놀랐다.

지난 5년간 공부를 하면서, 여행도 참 많이 다녔다. 영국의 시골 집들, 이탈리아의 아기자기한 건축물들.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




지금은 나의 아름다운 추억과 함께 간직할 소중한 재산이다.
누가 나에게 시간이 남으면 뭘 하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난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행을 가고 싶다...!!" 고....

연말정산...

한국에 들어와서 처음해보는 연말정산이었다...

소득공제...남들은 다들 13번째 월급이라고 하던데, 얼마나 공제가 되길래 그런건지....^^

그래도 조금이나마 기대를 해본다.. 대충 찾아본 유익한 웹사이트를 나열해 본다.


국세청 http://www.nts.go.kr/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 http://www.yesone.go.kr
국세청 현금영수증 홈페이지 http://www.taxsave.go.kr/

납세자연맹 http://www.koreatax.org/




얼마있으면 구정이 다가온다. 나의 아내에게는 처음이기도 한 구정... 어릴적에 시골집에 내려가서, 논에서 눈싸움도 하고 그랬었다.. 할머니가 챙겨주시는 아침 계란국도 내 기억 속에서는 정겹기만 하다...

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떠나신 그 자리를 나와 나의 아내가 채운다...

논문- 기나긴 여행





논문을 한편 마치는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비될까?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항상 계획하고 따르지만, 각자 개인의 성향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오늘 하루도 이 그래프를 분석하는데 대부분을 보내는 내 자신을 보고 이렇게 생각해 본다...





숫자가 싫다......................

It is first time to do this..

Finally, I have built my blog.. It is a first time to build the first one...^^